경기헤드뉴스 성미연 기자 |
‘바닷가의 조약돌은 날카로운 끌과 정이 아닌 부드러운 파도가 어루만져 둥글어 진 것이다’고 법정 스님은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준 바 있다.
몽돌은 남해 바닷가에 있는 지름 5~10센티미터 정도 되는 둥글고 단단한 돌멩이다. 그 몽돌을 볼 때 마다 ‘얼마나 파도에 휩쓸렸으면 이렇게 둥글어 졌을까, 얼마나 파도에 씻겼으면 이렇게 깨끗할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몽돌을 밟으면 빠드득 빠드득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단단하지만 둥글어 서로 부딪히면서도 상처 입지는 않는다. 굽이굽이 난관과 시련으로 모서리 다 깎아 내고 , 모든 것 다 참아내다 보니 어느새 눈에 쏙 들어와 욕심나게 둥글둥글해진 그런 몽돌 같은 사람 이정표 기흥구청장을 만났다.
날카롭고 정교한 끌과 정이 아닌, 뭉툭하지만 부드러운 파도가 조약돌을 쓰다듬듯 조직을 보둠고 이끌어 온 사람, 어떠한 유혹에도 탐하지 않고 꿋꿋함으로 공직자의 기본을 가장 잘 지켜온 사람. 나무나 돌처럼 심지가 굳어 목인석심(木人石心)의 41년 공직 생활을 충실히 이행한 이정표 구청장은 명예로운 퇴임을 눈앞에 두고 마음이 무겁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를 공직자의 모토로 늘 현장을 누비며 현장에서 직접 시민과 소통하면서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생활했던 그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때문에 현장에서 시민과의 직접 소통이 소원해진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기 때문이다.
“공직생활을 그만두는 마지막 날 까지 현장 둘러보며 현장에서 남은 시간을 갈무리 짓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 아쉽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공직자의 올바른 현 주소를 보는 듯 해 뿌듯하기까지 하다.
수원공고를 졸업한 이 구청장은 1980년 8월 20일 포곡면사무소로 첫 발령을 받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80년대 당시는 새마을 운동과 농사 행정 위주의 업무가 주가 되다보니 새벽 5시에 출근해 퇴비 나르는 일이 허다했다”며 “처음엔 내가 이런 농사 지려고 공무원 됐나 하는 자괴감에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있었다”고 본격적인 추억 소환을 했다.
“그 당시의 모든 초년 공무원은 한번쯤 가져봤을 자괴감일 것이다. 서류로 시민의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 공무원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시도 때도 없이 비상도 많았다. 자연재해(폭우, 태풍, 장마 등)가 많아 밤이고 새벽이고 삽 들고 현장에 출동이 잦아 고민도 많았다”고 당시를 솔직 담백하게 소회하는 그다.
태풍으로 뜯겨져 날아간 마을 지붕들, 파헤쳐진 도로와 쓰레기 범벅으로 넘쳐나는 하천, 쓸려 나가버린 못자리, 수족관에 납작하게 배 깔고 누워 있는 가자미처럼 납작 누워버린 보리며 나락 등... “지금처럼 자원봉사자나 단체들이 거의 없었던 때라 매번 공무원들이 동원되어 사태를 수습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기에 당연한 일인데도 어렸었고 젊었던 그 때는 그 상황들을 깊이 이해 못했다. 공직의 의무와 책임을 내 힘듦으로 애써 외면하려 했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에게서 오히려 사람냄새가 난다.
산뜻하고 정갈하게 사태 수습을 마치고 나면 갈고리처럼 휘고 마디마디 옹이 진 손으로 주민들이 찾아와 “고마워. 정말 고마워. 올 농사 자네들 덕분에 배 안 곯고 잘 짓게 됐네”라고 손 마주 잡아 주던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오히려 더 감사의 마음을 배우며 바른 공직자로서의 뿌듯함과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다.
“1999년 건설과의 하천과장 엮임 시 7월 31일부터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피해가 엄청났다. 8월 3일에 한반도를 강타한 올가 태풍의 피해는 실로 무서울 정도였다. 태풍 피해 조사로 한 달간 집에도 못 들어간 적도 있었다”며 “나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묵묵히 지휘를 따라 준 후배들이 있었기에 보람찼다. 피해조사 후 피해금으로 580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아 냈을 때는 녹 먹는 사람으로서의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고 늘 현장에서 답을 찾는 그 다운 말이었다.
경안천, 탄천, 신갈천 등 주요 하천을 재정비하고 산책로 및 자전거 길 조성을 통해 용인시의 친환경 생태도시 기틀을 마련하는 등 공직자로서 용인시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이정표 구청장.
비단옷을 입고도 그 위에 홑옷을 겹쳐 입는 의금상경(衣錦尙絅)의 자세로 늘 공은 동료들에게 돌리며 겸양지덕(謙讓之德)을 실천한 이 구청장은 후배 공직자에게 “나보다 약한자를 배려하고 나의 경쟁자를 존중하며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 마라”며 “나 자신의 언행을 엄하게 다스리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숱한 민원 현장에서 관계부서와의 소통과 추진력으로 기흥구민의 불편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정표 기흥구청장.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화엄경의 말처럼 이제는 41년이라는 공직의 옷을 벗고 무탈한 일상이 주는 행복의 가치를 마음껏 만끽하기를 기대한다.
축구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골 세리머니 하듯 이제는 명예로운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이정표 구청장도 자신에게 신뢰와 격려의 골 세리머니를 해보길 권해본다.
“그래. 나 지금껏 41년의 공직 생활 이정도면 잘했어. 자랑스러워. 화이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