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보영 화가 & 미술작가
경기헤드뉴스 | 씨푸드 매니아들에게서 핫플레이스 소식이 들려온다. 핫플 이라 하면 젊은이들의 성지가 아닌가 싶어 맛 보장에 의심이 생기는 바. 평소 움직이는 데 있어선 나무늘보와 친구 수준이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선 누구보다 부지런한 게으른 미식가는 정보 수집에 팔을 걷었다.
왜 크랩 뒤에 52라는 숫자가 왔을까 하던 궁금증은 위치를 찾은 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트레이드 타워 52층이다. 그렇다면 뷰는 생각만 해도 합격이다.
크랩만 있나 했더니 네기 다이닝과 카페드 리옹이 각각의 파트를 맡고 있다. 일단 믿을 만한 먹거리가 두 가지 이상은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번잡함과 음식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뷔페식당이 아닌가. 주춤하게 만드는 부분은 높은 식대에도 있었지만, 국내 최대라는 말에 혹하여 마침내 먹을 때마다 기꺼이 움직여주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트레이드 타워에 도착 후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놀이 기구를 타는 듯 설렘을 준다. 52층까지 기분 좋게 한 번에 올라가서 내려 준 곳은 여느 뷔페식당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구석구석 빈 공간 없이 먹거리들이 빼곡한 가운데 탁 트인 통창으로 보이는 하늘과,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은 멋지다 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공간의 여유로움이 노을 지는 하늘까지 품었다.
이곳에 서라면 뭘 먹어도 분명 맛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씨푸드라니. 살이 찌더라도 여기서라면 슬퍼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기분은 이미 여기 층 수 보다 높은 곳에 가 떠 있다. 공간이 주는 기쁨과 음식을 향유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중추신경은 취했을 때 보다 더 마비된 듯하다. 좋다. 이제 배부른지 모르고 끝없이 먹어 줄 준비를 마쳤다.
오픈 키친이라 각 파트마다 조리하는 과정들을 직접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문 즉시 조리가 이루어지고 자리로 가져다주니 여느 식당과도 확실한 차별화다. 먼저 나올 크랩 요리를 기다리며 준비된 한입 요리들을 보니 정성 들이지 않은 플레이트가 하나 없다. 트러플과 캐비어 성게알이 가니쉬된 여러 요리들이 색색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고급재료들을 탐닉 하듯 살피며 입 안에 넣을 때 마다 축제가 따로 없다.
갑각류의 천국인 곳이니 만큼 웍 코너엔 갈릭 랍스타, 진저크랩, 칠리랍스터, 버터크랩을 주문할 수 있다. 두 가지 요리를 주문하고 일식 요리 파트를 맡고 있는 네기 다이닝의 셰프들의 요리 존으로 향했다. 여행하듯 신난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리듬이라도 탈까 싶어 애써 맘을 누른다.
신사동에 위치한 네기 다이닝 라운지의 방문 기억이 좋았기 때문에 일식 파트를 전담한단 사실이 기대감을 주긴 했으나 그 구성은 생각한 이상이다. 사시미와 스시는 물론이고 스끼야끼와 튀김요리인 쿠시아게까지. 알차다.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만큼 요리해 줄 것이 아닌가. 오늘은 왕이든 왕비든 그 누구든 부럽지 않다.
입 안에서 녹는 랍스터 회의 끝맛이 신선한 만큼 깔끔하다. 곧이어 크랩 요리들이 연달아 나온다. 싱가포르에서 꽤 비싼 가격에 모자란 듯 먹었던 크랩 요리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추억의 그 맛은 아닐지라도 성공한 사람이 된 듯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이곳은 아무래도,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인가 보다.
아까부터 코끝에 아름답게 마저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릴 코너의 유리 케이스 안에 고이 앉아 있는 육류와 해산물의 빛깔들이 선명하게 반짝인다. 그릴에서 구워지는 그 냄새는 누구라도 무장 해제시킬만한 절대적 힘이다.
홀린 듯 주문 후 먹어 보니 여기, 스테이크 마저 맛집이다. 혹시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가 오너 이기라도 한 건가. 모두를 살찌운 후 나가는 길을 끓는 찜통으로 안내할 게 아니라면 어떻게 끝까지 맛날 수 있나.
그런 의심에도 디져트 코너에 평소 즐기는 카페 드 리옹의 밀푀유를 보니 하나만 먹을 수 없다. 맛있는 젤라또도 탱글한 과육미 뽐내는 애플망고도 포기할 수 없다.
위대한 인간이란 지금 여기선 모두에게 해당 된다. 장기의 대부분을 비집고 나갈 만큼 위들이 부풀어 커졌으리라. 위장의 상태는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의 얼굴은 참으로 밝다. 게으른 미식가도 오늘만큼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보낸 듯 보람차다.
행복이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소화 시키느라 애쓸 내 위의 사정은 모른 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오면서도 더 먹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과 미련을 숨기고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 같은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절제하는 삶만이 진정한 행복일지라 여기면서도 인생은 원래 아이러니한 것, 한 번쯤은 플렉스 해보는 시간도 윤택한 삶을 채울 기분 좋은 기억 조각 채우기로 꽤 괜찮은 선택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