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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온(FACT ON)

숲·찐빵·루지…횡성의 여름 하루

자작나무 숲길에서 누룽지 커피까지, 빠르게도 느리게도 흐르는 시간

 

경기헤드뉴스 권민성 기자 | 

여름의 횡성은 숲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에어컨 바람도 선풍기 바람도 아닌,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살랑거리는 바람이 이 계절 이곳의 인사말이다. 울창한 숲길을 걷다 보면 목소리가 저절로 작아지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가 차례로 귀에 들어온다.

 

숲길 끝에서 만난 것은 오두막 같은 카페였다. 붉은 우체통이 서 있고 할머니 집에 온 듯한 온기가 도는 그곳의 대표 메뉴는 무쇠솥에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다. 여기에 누룽지를 더하면 구수한 맛이 살아난다. 커피를 한 모금 넘긴 뒤 숭늉을 마신 것 같은 끝맛이 남는다. 카페 옆에서는 딸이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한 번 구워진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페인팅 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다음 목적지는 찐빵이었다. 모락모락마을에서는 반죽부터 꾸미기까지 직접 해서 나만의 찐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두 개를 붙여 눈사람을 만들거나 고슴도치, 공룡 모양으로 빚는 것도 가능하다. 야구공을 빚는 사람 옆에서 축구공을 빚고, 네잎클로버와 컵 모양 찐빵이 나란히 놓인다. 사서 먹는 재미와 만들어 먹는 재미는 확실히 다르다.

 

횡성을 가장 빠르게 즐길 수 있는 곳은 루지 체험장이다. 핸들을 잡고 몸쪽으로 당기면 속도가 줄고, 밀면 나아간다. 2.4km 코스를 굽이굽이 내려오는 동안 곳곳에 배치된 재미난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만의 놀이가 아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올 만큼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짜릿한 속도다.

 

반대로 가장 느리게 흐르는 곳은 정원이 딸린 밥집이었다. 21년째 손수 가꿔온 꽃밭이 식당 문 앞을 지키고 있어, 밥을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배가 부른다. 상에 오른 우엉은 뜻밖에도 달았다. 탄닌 때문에 쌉쌀한 우엉을 물에 담가 떫은 성분을 빼내면 단맛만 남는다는 것이 주인의 설명이다. 과한 양념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낸 떡갈비도 함께 나왔다. 식당을 열겠다고 했을 때 한 스님이 건넸다는 말, 내 가족을 먹인다는 마음으로 하면 별 탈 없을 것이라는 그 말이 20년 넘게 이곳의 기준이 되어 왔다.

 

다시 숲이다. 2만여 그루의 자작나무와 굴참나무가 뿜어내는 향이 폐 깊숙이 들어온다. 산딸기를 따던 이 산의 주인은 2012년 퇴직한 뒤 65,000평 규모의 산을 사들여 11년째 가꾸고 있다고 했다. 이제 겨우 반쯤 왔고 앞으로 10년은 더 손을 봐야 예뻐질 것 같다는 그에게 누군가는 우공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어리석은 노인이라는 뜻이지만, 정작 본인은 우직함 없이는 아무 일도 못 한다며 웃었다.

 

산 위로는 꼬마 열차가 다닌다. 도시락을 싸 들고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천천히 오르다 보면, 빨리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기다리는 것은 금계국 꽃차다. 길가에 흔히 피어 있는 그 노란 꽃을 프라이팬에 덖고 식히기를 아홉 차례 반복하는 구증구포를 거치면, 찻잔 속에서 노을 같은 빛깔이 우러난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나온 이야기는 이랬다. 행복은 별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자꾸 비교를 해서 불행해진다고, 숲에 와서 배운 것이 있다면 숲속의 친구들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싶은 사람에게도, 쉼표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이 산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속도로 여름을 건네고 있다. 숲과 찐빵과 속도와 느림이 하루 안에 나란히 놓이는 이 여정은, 계절이 바뀌어도 찾는 이들에게 저마다의 쉼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영상출처 : 이제는 지방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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