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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온(FACT ON)

1960년대, 한국 가요의 르네상스

남진·나훈아·배호·최희준…억압 속에서 피어난 대중음악의 봄

 

경기헤드뉴스 권민성 기자 | 

영사기가 돌아간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닿고 닐 암스트롱이 첫발을 딛던 그 시절, 이 땅의 라디오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1960년대는 텔레비전 방송이 자리를 잡고 미국 문화가 물밀듯 들어오던 때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함께 슬퍼했고, 혜성처럼 등장한 비틀즈에 열광했으며,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스윙과 테크닉에 심취했다. 그 무렵 뉴스 영화는 이렇게 전했다. "동남아 공연에서 절찬을 받은 재즈 싱어 패티 김 양이 이번에는 다시 구미 공연을 떠나게 됐다."

 

음악다방이 토종 트로트와 나란히 공존하던 시절이다. 이촌향도의 물결을 반영하듯 트로트의 무대는 고향에서 도시로 옮겨갔고,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 한편에는 어두운 시대를 비추는 음악도 함께 있었다. 모든 음반이 심의를 거쳐야 했던 통제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움텄으니, 1960년대는 그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기다.

 

무대의 한가운데에는 남진이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상을 입고 로큰롤을 부르며 원조 오빠부대를 이끈 그는 1965년 데뷔한 뒤 '울려고 내가 왔나'와 '가슴 아프게'를 연타로 히트시키며 정상에 올랐다. 1년 뒤인 1966년 나훈아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가 열렸고, 그 경쟁은 무려 20여 년에 걸쳐 이어졌다. 남진의 '목화 아가씨'와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은 그 시대를 양분한 두 목소리를 상징한다. 특유의 창법으로 전설적인 카리스마를 얻은 나훈아는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이름도 있다. 배호다. 1967년 발표한 '돌아가는 삼각지'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가 울어' 같은 곡을 남기고 1971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대 음악가들은 그를 두고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천성의 목소리"라고 평했다. 그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찬사를 받으며 불멸의 가수로 통한다.

 

트로트 일색이던 흐름에 다른 색을 입힌 이는 최희준이었다. 1950년대 미8군 무대 출신으로 스탠더드 팝의 최고봉으로 꼽힌 그는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데뷔한 뒤 '진고개 신사', '맨발의 청춘', '길 잃은 철새', '팔도강산' 등 숱한 히트곡을 냈다. 대표곡 '하숙생'은 트로트와는 결이 확연히 다른, 재즈와 스윙에 뿌리를 둔 노래다. 여기에 익살을 담은 '나는 곰이다'까지, 그의 레퍼토리는 60년대 대중가요의 새로운 흐름을 그대로 대변한다.

 

필름은 여기서 멈추지만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저마다의 목소리를 지켜낸 그때의 곡들이 반세기를 건너 여전히 누군가의 하루에 흘러나오고 있으니, 1960년대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영상출처 : KTV 모두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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