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경제] 판결문은 장례식장으로 배달됐다

  • 등록 2026.02.06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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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업체 덮친 '473일의 지옥'... 사법부는 기업의 호흡기를 떼버렸다

 

경기헤드뉴스 권준형 기자 | 

대한민국 사법부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 본지 AI 데이터가 '2024 사법연감'을 정밀 분석한 결과, 2023년 기준 민사 합의 사건 1심 판결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473.4일로 집계됐다. 이는 2018년(290일) 대비 5년 만에 63%나 폭증한 수치다.

 

이 '473일'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자금 회전이 생명인 중소기업에는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시간과 같다. 법원이 판사들의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위해 사건 처리를 미루는 사이,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한 하도급 업체들은 판결문 대신 '폐업 신고서'를 받아 들고 있다. '지연된 정의'가 어떻게 대한민국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을 파괴하고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을 추적했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기업 간 분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사 합의 사건에서 1심 선고까지 1년 4개월(473일)이 걸린다는 것은, 사실상 사법 시스템이 '권리 구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포함하면 확정판결까지는 평균 3~4년이 소요된다.

 

수도권의 한 전문건설업체 A사의 사례는 이 통계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원청으로부터 10억 원을 받지 못해 소송을 낸 A사는 첫 변론 기일이 잡히는 데만 6개월을 기다렸다. 그사이 법원 정기 인사가 겹치며 담당 판사가 교체됐고, 공판 절차는 갱신됐다. 결국 A사는 연 19%의 고금리 사채 이자를 버티지 못하고 1심 선고 4개월 전 최종 부도 처리됐다. 뒤늦게 도착한 승소 판결문은 이미 숨이 끊어진 기업의 시신 위에 놓인 조화(弔花)에 불과했다.

 

판사님들의 '우아한 태업', 경제적 살인이 되다

 

재판 지연의 원인은 구조적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이후, 법원 내부에는 "열심히 일하면 손해"라는 기류가 고착화됐다. 인기투표로 선출된 법원장은 후배 판사들에게 신속한 재판을 독려할 명분을 잃었고, 판사들은 '주 3일 재택' 뒤에 숨어 사건 처리를 미루고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한 경제 지표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657건으로 전년(1,004건) 대비 65%나 급증했다. 고금리와 불경기 탓만 할 수 없다. 적시에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게 막아선 법원의 '병목 현상'이 한계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핵심 트리거(Trigger)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Business Impact]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뇌관

 

사법부의 비효율성은 이제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뇌관이 되고 있다.

  • 연쇄 도산(Domino Bankruptcy): 1차 하청업체가 재판 지연으로 대금을 받지 못하면, 그 피해는 2차, 3차 자재 납품 업체로 전이된다. 사법부발(發) 리스크가 공급망 전체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 투자 매력도 하락: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계약 분쟁 해결에 4년이 걸리는 나라'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사법 시스템은 한국 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이는 주범이다.

 

[Strategic Foresight] 사법 엑소더스와 AI 법관

 

'지연된 정의'가 일상화되면서 기업들은 공적 사법 시스템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비싼 수수료를 감수하더라도 상사중재원이나 사적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는 '사법 엑소더스(Exodus)' 현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또한, 이는 'AI 법관 도입' 논의를 앞당길 강력한 명분이 될 것이다. "감정 없는 AI가 게으른 인간 판사보다 낫다"는 여론이 임계점을 넘고 있다. 사법부가 지금 당장 뼈를 깎는 쇄신을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판사석에는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이 앉게 될지도 모른다.

권준형 기자 no1mentor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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