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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talk talk

권토중래(捲土重來)

 

경기헤드뉴스 임채헌 기자 |

 

捲:거둘권 , 土:흙 : 重:거듭 , 來:올

 

한 번 전쟁에 패했어도 힘을 다시 비축해 승리를 거머쥔다, 혹은 일이 한 번 실패해도 다시 가다듬고 성공에 이른다는 의미로 쓰인다.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 두목의 시 '제오강정(題 烏江亭, 오강 정자에서 짓다) 에서 유래했다.

오강은 항우가 유방에게 패하여 최후를 맞이한 곳인데, 당초 두 사람은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나누기로 했었으나 유방은 항우를 살려두면 후환이 되니 그를 습격해서 죽여야 한다는 장량과 진평의 진언에 따라 화의를 깨고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추격해 포위했다.

항우는 오강으로 도망쳤는데 이때 배를 끌고 온 오강의 정장이 강동(강남)으로 돌아가서 재기하시죠.라고 권했으나 항우는 "강동에서 함께 일어난 8천 장정들이 모두 죽었는데 무슨 낯으로 강동으로 돌아가겠나?"라면서 유방의 포위망에 뛰어들어 최후의 결전을 치르다 목을 베어 자결한다.

그로부터 천여 년이 지나, 당나라 후기의 시인 두목이 오강의 객사에 머무르다가 항우와 오강정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지은 시가 바로 '제오강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시 항우가 강동에서 재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만 해도 강동 지역은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었고 인구도 많지 않았으며,[2] 이미 중원 전체를 장악한 유방을 상대하기엔 격차가 너무 컸다. 더 장기적으로 강동을 개발하며 국력을 축적하려 해도 유방의 한나라가 이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릴려고 해도, 이민족들이 이미 터를 잡고 살았던데다가 그 당시에 존재했던 나라인 민월과 동구는 유방 편이었기 때문에 항우가 다시 일어서는것을 마냥 지켜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 한나라의 국력 또한 한계에 가까웠던 상황이었고, 이때 잃은 손실을 온전히 복구하기 위해서 약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결정적으로 거기서 더 국력을 손실했으면 흉노에게 멸망당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항우가 만약 강동으로 도주해 전쟁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면, 항우의 천하가 재림하긴 어려웠을 지라도 한과 초가 공멸했을 확률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영상출처:NATV국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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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헌 기자

임채헌
ghnews8567@daum.net
010-5170-7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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